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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론병 일지

크론병과 함께 하면서 힘들었던 것들...

by BlackSaltDragon 2024. 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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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론병의 발병 원인과 증상들

크론병의 원인은 아직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과도한 스트레스가 주원인이라고도 하던데 세상 살아가면서 스트레스 안 받는 사람이 있겠는가? 처음 크론병이라고 들었을 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냥 조금 불편한 정도라고... 그런데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둘씩 몸에 이상이 오기 시작했다. 약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항상 무기력하고 피곤하고 몸이 흘러내려 땅속으로 들어갈 것만 같은, 중력이 나에게만 더 크게 작용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염증 때문인지 복통이 수시로 생겼고 그럴 때마다 다량의 혈변을 보고 항문질환이 재발해서 분비물이 나와 옷을 버리기 일쑤였다. 요즘도 종종 상태가 안 좋을 땐 디펜드 패드를 붙이고 다니곤 한다. 크론병이라는 게 입부터 식도, 위, 대장, 소장, 항문에 이르기까지 소화기 쪽엔 다 영향을 미친다고 하는데 나의 경우 식도염, 위염이 있고 소장과 대장은 상태가 매우 심해지고 좁아져서 절제하는 수술을 받았다. 합병증으로 항문에도 질환이 생겨서 지금까지 4번 정도 수술을 받았고 지금은 증상이 악화될 때마다 치루가 도져서 복통과 함께 항문통증을 일으킨다. 치루증상이 발생할 땐 몸살증상과 함께 아랫배와 엉덩이가 기분 나쁘게 욱신거리면서 아프다. 긴장하거나 신경을 쓰면 급박변이 나올 때가 있다. 그래서 서울에 병원을 갈 때는 전날 밤부터 아무것도 안 먹고 버스를 타고 간다. 수면시간도 들쭉날쭉하다. 잠이 잘 올 때도 있지만 잠이 안 올 때도 많다. 심하게 아파서 응급실에 실려갈 때엔 가끔 과호흡 증상을 겪기도 했다.

 

주변 사람들의 지나친 간섭과 이용하려는 심리

지금 돌이켜보면 크론병 진단을 받고 나서 주위 사람들에게 너무 많이 휘둘렸던 것 같다. 정기적으로 병원을 다니다 보니 '누구네 아들은 죽을병 걸려서 내려왔다'는둥 온갖 소문이 났다. 시골이라 그런지 소문은 빠르게 살이 붙어서 내 귀에 들어왔는데, 내용을 들어보면 빨리 죽으라고 저주하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남이 잘못되어야 자기 마음이 좋은가보다. 친척들을 포함해서 주변 사람들 중 다수가 많이 간섭하기 시작했다. 주로 자신이 맹신하는 몸에 좋다는 것을 먹으라거나 해보라는 것들이었다. 크론병의 경우 관리를 잘 못하거나 음식을 잘 못 먹으면 소장과 대장에 염증이 대량 발생하는데 염증이 났다가 아물었다가를 반복하면 점점 좁아져서 회복이 불가능해진다. 그 때문에 그들의 호의(?)를 거부하노라면 온갖 비난이 쏟아졌다. 자기가 시키는 것만 하면 나을 수 있는데 왜 말을 안 듣고 안 좋은 약이랑 수술로만 해결하려고 하느냐는 등의 내용이었다. 멀쩡한 소장, 대장, 항문 등을 잘라내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진정으로 내 입장에서 생각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듯했다. 몸이 안 좋아서 일을 못하고 쉬고 있을 때면 어김없이 누군가 찾아와서 자기 일을 도와달라고 한다. 일을 할 수 있었으면 제대로 된 일을 구했겠지! 남이 아프거나 말거나 자기 이익만 생각하는 사람들. 내가 삶의 주인공이라 여겼던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이 세상에서 망가진 부품 중 하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자발적 취업제한?

군대를 다녀오고 대학교를 졸업하고 한참 취업활동 할 시기에 크론병 진단을 받았다. 지역에서 잘 나가는 회사에 3차 면접까지도 합격했으나 인사과에서 연락이 왔다. 실무자가 아픈 사람 받으면 본인이 퇴사를 하겠단다. 회사 들어가는 것을 포기하고 한동안 병원을 다니면서 무슨 일을 해야 하나 고민을 했다. 고민 끝에 일반 회사는 다니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공무원 시험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당시 공무원 열풍이 불면서 경쟁률이 어마어마하게 높았고 합격점수대는 87점 정도였다. 부랴부랴 정보처리기사 자격증도 따고 학원을 다니면서 첫 시험을 쳤는데 과락에 평균 45점을 받았다. 충격적인 점수를 뒤로 하고 학원과 병원을 열심히 다니며 공부하길 약 2년 되었을 무렵 내 평균점수는 80점대를 돌파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무리를 했던 탓인지 크론병이 악화가 되면서 입원을 하게 되고 아버지의 반대로 공무원 시험을 포기하게 되었다. 몸이 호전이 되면 시내에서 할 일을 찾아서 하다가 다시 몸이 악화되면 그만 두기를 반복했다. 마치 꾀병 부리는 사람처럼 일을 제대로 해보려고 하면 아팠다. TV에 생로병사의 비밀이나 명의 등에 나오시는 의사 선생님들은 크론병은 관리만 잘하면 정상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라고 했고, 다른 크론병 환우분들을 봐도 다들 일을 하고 지내던데! 난 겉보기에 사지멀쩡하고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이렇게 일을 하려고 하면 몸이 아픈 걸까?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나는 점점 더 무기력해졌고 한동안 현실도피생활을 하면서 방황을 했다. 우울함을 이겨내기 위해 게임을 하거나 웹툰을 보거나 영화와 드라마를 보거나 하면서 쓸데없이 귀한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소장과 대장에 협착이 와서 막히게 되고 막힌 곳을 절제하는 수술을 받았다. 회복을 하면서 지내던 어느 날 문득 이렇게 사는 건 더 이상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여기저기 일할 곳을 찾아보다가 근처 학교의 문단속 근무자를 뽑는 걸 알게 되어 지원했고 채용이 되었다. 급여는 작았지만 수술 후 배에 힘도 안 들어가고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해서 계속하기로 했다. 지금 상태로는 내 인생을 뒤집을 만한 것이 없다고 판단해서 집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보기 시작했고 지금은 그것들에 대해 공부 중이다. 과연 내 인생에 반전은 있을 것인가? 앞날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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