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아픈 아이로 낙인찍힌 학교 생활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유치원과 국민학교를 다닐 무렵부터 배탈이 자주 났던 것 같다. 학교를 갔다가 종종 배가 아파서 엄마가 학교에 오시게끔 만들었다. 시골이다 보니 버스도 자주 안 다녀서 급할 땐 시내 병원까지 택시를 타고 갔는데 시내까지 거리가 25km쯤 되어서 택시요금도 많이 나왔다. 병원에 가면 의사 선생님은 곽란이라고 하면서 주사와 수액과 먹는 약들을 처방해 주셨는데 그땐 어릴 때라 무슨 약 인지도 모르고 상태가 호전된 것 같으면 집에 돌아왔다.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아, 나는 남들보다 소화가 잘 안 되고 장이 안 좋은가 보다' 하면서 지냈다. 그런데, 장만 안 좋았던 게 아니었다. 5살 때인가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서 코를 박은 적이 있는데 그때부터 코로 숨을 못 쉴 정도로 비염과 축농증을 달고 살았다. 그 때문에 기관지와 폐도 안 좋았고 코로 숨을 잘 못 쉬니까 공부할 때도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그렇게 지내던 중 고등학교 3학년이 끝날 무렵 혈변을 보게 되는데 부랴부랴 병원을 갔더니 항문질환 중 하나인 치열이라고 하면서 약을 먹고도 안되면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약을 먹고 1년간은 괜찮았는데 다시 혈변을 보게 되고 당시 입영통지서가 나오는 바람에 결국 대학교를 휴학한 후 항문 수술을 하고 군대에 입대했다. 당시 병무청에서 신체검사를 받았는데 무려 1급이었다. 군생활을 그럭저럭 하며 지내던 중 전역까지 약 2개월을 앞두고 혈변과 빈혈이 심해 부산통합병원 중환자실로 실려갔다. 헤모글로빈 수치가 5 정도였는데 응급상황이라고 했다. 수혈을 받고 군 병원 생활을 하다가 역시 1급으로 제대했다. 제대 후 대학교를 다니면서 예비군 4년 차까지 받고 크론병이라는 진단이 나와서 나머지는 면제를 받았다. 알고 보니 크론병은 군대 면제사유였다. 지금 생각하면 어이가 없지만 그렇다고 군대를 다녀온 건 후회하지 않는다. 군대에서 잃은 것도 있지만 얻은 것도 있었기에...
계속 반복되는 복통과 항문 질환, 크론병이라고?
제대 후 큰 병원을 가봐야겠다는 생각에 서울에 있는 대장항문전문병원을 가서 검사를 받았는데 여기에서도 크론병이라는 진단을 바로 받지 못했다. 진료 결과 치핵과 치열 등 항문질환이라고 해서 다시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 대학교를 다니면서 2년쯤 지났을 때 다시 혈변을 보게 되고 서울 병원을 오니 다시 항문질환이 재발했다고 해서 또 항문수술을 받았다. 그런데 이번엔 두 달이 지나도록 수술부위가 아물지 않고 분비물이 나오는 것이었다. 항문질환이 계속 재발하고 잘 아물지 않자 다양한 검사를 하고 대장내시경을 통해 조직채취한 것을 연대세브란스병원에 의뢰하고 나서 결과를 듣게 되었는데 크론병이라는 최종 진단을 받았다. 이때가 2007년이니 진단받은 지 거의 20년이 다 돼 간다. 이땐 크론병이 무슨 병인지 잘 알려지지도 않았던 터라 듣고도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냥 무슨 병인지 알게 됐으니 빨리 치료약을 써서 낫게만 해달라고 했다. 그런데 이게 또 무슨 희귀 난치성질환이라고 한다. 그렇게 크론병 관련 약을 먹으면서 이 질환의 심각성을 모른 채 몸을 조심히 다루지 못하고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 어릴 때부터 앓던 비염과 축농증은 우연히 알게 된 한의원의 약을 6개월 먹고 낫게 되었다. 가격이 비싸기도 했고 사짜 느낌이 나서 불안하기도 했는데 다행히도 난 먹고 효과를 본 쪽이었다. 코로 숨을 쉴 수 있게 되니 엄청나게 시원하고 살아있는 느낌을 받았다. 평소에 복통은 가끔 있었지만 혈변과 항문질환이 주로 심했기 때문에 크론병은 항문 쪽 질환이 주된 증상인 줄 알고 지냈다. 그러나 그 생각은 얼마 안 가서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어느 날 갑자기 배가 부풀어 오르면서 가스도 안 나오고 변도 안 나오고 답답하고 구토를 하는 증상이 발생했다. 바로 서울 병원으로 가서 입원을 하고 금식을 하면서 CT 검사결과를 듣는데 마비성 장폐색이라고 했다. 금식하고 며칠 지켜보다가 저절로 풀리면 다행인데 안 풀리면 수술을 해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이때 알게 된 것이 크론병이 있으면 소장과 대장 벽에 상처가 나고 아물기를 반복하면서 장 내부가 점점 좁아진다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면 장이 멈추기도 하고 막히기도 하면서 장폐색이 유발된다고 한다. 이때부터는 증상완화를 위해 휴미라라는 주사제를 맞기 시작했는데, 휴미라를 맞고부터는 정상인이 된 것처럼 상태가 많이 호전되었다. 사람은 왜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인지... 이때 나는 마치 다 나은 것처럼 다시 몸을 잘 돌보지 않고 일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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